그녀는 모든 계획이 있어 – 히가시 노 게이고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 어떻게 해서든 부자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는 오다 쿄코의 직업은 도우미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거의 사라진 직종이지만 1980년대 거품경제가 호황을 누릴 당시 각종 기업의 설명회가 많았던 시기에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유망 직종이었다고 한다.(한국으로 치면 행사도우미 정도로 여겨지지만 사업에 대한 전문지식도 갖춰야 하다 보니 고학력자도 많았다고 한다.어쨌든 쿄코는 긴자의 퀸 호텔에서 하나나 보석점의 손님을 응대하는 오늘의 일이 정말로 두근거릴 뿐이다. 얼마 전부터 그가 안고 있는 ‘다카미 슌스케’가 파티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골머리를 앓으며 드디어 고견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된 그 순간, 이게 웬일인가. 호텔 방에서 회사 동료 마키무라 에이리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담당 형사 「시바타」와 우연한 계기로 만남을 완수한 쿄코는, 거기에 이끌려 사건 수사에 발을 내디디게 된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엘리의 과거, 과연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본에서 1988년 출간된 소설 그녀는 모든 계획이 있다는 경쾌하고 튀는 탐정물을 집필하고 싶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패기 넘치는 작품이다. 히로인 쿄코와 시바타 형사의 이름 모를 공조수사(?)가 정말 재미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쿄코」의 이색적인 시각이 사건의 영감을 부르는 중요한 도구가 되어,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등장 인물의 접점이 조금씩 정체를 나타내 가는 불안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이 소설의 장점은 여기까지가 전부이다. 여전히 가독성이 뛰어난 작가의 패기에 찬 작품. 유감스럽게도 그 외에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장점이 없는 소설이다. 잘 알다시피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단한 다작 작가다. 1년에 두세 권씩 계속 출간돼 2021년 현재 출판작품 수가 100권에 육박하고 있다니 놀라운 수준이다.(일본 국내에서도 대부분이 모두 출판되었다.) 그런데, 과연 100권이나 되는 작품이 하나같이 훌륭하고 재미있기만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대문호로 불리는 유명 작가들도 으레 그렇듯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작품 활동에 휴식을 취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슬럼프 여부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전에 휴식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시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던 그이기에 작품 하나하나의 완성도 격차를 실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그런 점에서 볼 때 유감스럽게도 이 소설은 그의 역량이 완전히 결집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녀 주인공의 패기 있는 수사과정을 보여주려 하지만 그나마 평범한 탐정소설, 그것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주인공 쿄코에게 있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난장판 모험소설의 길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재치 있는 사건 속임수가 눈길을 끌지만 전체적인 사건 구성이 1988년이 아닌 2021년의 독자에게는 너무 예측 가능한 전개라는 점이 아쉽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 그런지… 출판사는 복고 미스터리라는 카피 하나로 독자의 시선을 돌리려 하지만, 굳이 현대의 독자가 신간소설을 펼쳐놓고 시대보정을 감안해야 할까.

100여 권이나 되는 작가의 소설 가운데 대부분의 작품이 국내에서 나왔고 이미 2, 3판이 나온 작품도 많아 출판사들로부터 줄곧 외면당해 온 88년 작품이 이제 와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건대 작가의 유명세에 편승한 유명 이외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교코의 꿈’이라는 원제를 ‘그녀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는 그럴듯한 제목으로 바꾸고, 맞지 않는 옛 표현들을 조금씩 수정해 출판하기만 하면 된다. 역시 베스트셀러가 됐으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대성공인 셈이다.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양한 작품 형식을 경험하고 싶은 종래의 팬이라면 상관없습니다만, 만약 이 소설로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입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끝까지 만류하고 싶다. 그 밖의 유명한 작품들을 먼저 선보였으면 좋겠다. 작품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30년 이상 전 작가의 뛰어난 초기 작품이 21년 현재에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의 입장에서 기쁘지만은 않은 쓸쓸함이 느껴진다.

별점 : ★★☆